화가와 전시

화가 정현웅에서 김환기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만든 거장 다섯 명의 이야기

narikkot5020 2025. 6. 30. 15:03

한국 현대미술은 식민지 시기,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
거대한 역사적 격변 속에서 태동하고 성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화가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시대를 포착하며
회화라는 언어로 질문을 던져왔다.
특히 근대미술의 길을 열었던 1세대부터,
전통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계 속 한국 미술의 위상을 높인 화가들까지,
그들의 삶과 작품은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정현웅,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김환기 등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다섯 화가를 통해,
우리 미술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함께 살펴본다.

한국 현대 미술을 만든 거장(화가) 작품

시대의 풍경을 그린 서정적 리얼리즘 – 화가 정현웅

정현웅(1912~1976)은 해방기와 한국전쟁 전후 격동의 시기에
민중적 삶의 애환을 서정적 필치로 담아낸 화가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서구 근대미술의 흐름을 배우면서도
조선적 정서를 잃지 않았고,
특히 농촌과 도시 빈민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정현웅의 작품에는 사실적인 묘사력과 함께
은은한 색감, 부드러운 붓터치가 공존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대개 고개를 숙이거나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없는 시선을 던지는데,
이는 당시 시대를 살아낸 평범한 사람들의
조용한 저항과 체념, 그리고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민중의 현실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그림을 통해 사회를 고발하기보다는,
삶의 현장 속에서 발견되는 소박한 희망을 보여준 점이
정현웅만의 미학이었다.

 

생활 속 인간미, 질박한 미의식 – 화가 박수근

박수근(1914~1965)은 ‘우리네 소박한 일상’을
질박하고 단단한 화법으로 구현해 낸 대표적 화가다.
그의 그림을 보면 대개 장돌뱅이, 빨래터의 여인들,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있는 사람들 등
시골 혹은 변두리 서민들의 삶이 중심에 있다.

특징적인 건 화면을 이루는 독특한 질감과 색조다.
거친 마티에르 위에 단색조로 눌러 찍듯 인물을 묘사하며,
그 안에 한국인의 강인함과 공동체적 정서를 함께 담았다.
그림의 전체적인 톤은 회색빛 돌담처럼 무채색에 가깝지만,
그 안에 스며든 인간적 온기 때문에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박수근은 가난 속에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고,
자신의 그림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터전을 지켜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회화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중한 시각적 기록이다.

 

민족적 고통과 신화적 상징 – 화가 이중섭

이중섭(1916~1956)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삶과 작품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 화가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그는,
사회적 혼란과 민족적 아픔을 그림 속에 녹여내면서도
동시에 자신만의 신화적 세계를 구축했다.

가장 유명한 소재인 황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다.
그것은 거친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의 분노,
그리고 투쟁적 에너지를 상징한다.
또한 은지화(담배 은지에 긁어 그린 소묘)는
유리알처럼 빛나는 선으로
그의 절실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다.

이중섭의 작품은 불안정하고 거칠지만
그 속에 넘치는 생명력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는 예술이 ‘희망의 기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색과 선,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다 – 화가 유영국

유영국(1916~2002)은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색면 추상, 선과 형태의 실험을
자신만의 언어로 발전시켜 나갔다.

유영국의 회화는 과감한 색채와 간결한 구성으로 유명하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기하학적 선,
중첩되는 색면은 때론 산맥과 지형을 연상시키며,
한국적 자연의 율동감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철저히 추상적이다.
그는 말년에 “내 그림은 자연의 정신을 화폭 위에 옮기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조형 언어의 본질을 탐구하며,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추상의 결합 가능성을 넓혔다.
그래서 유영국의 그림은
국제 추상미술의 맥락 속에서도
고유한 존재감을 지닌다.

 

점, 우주의 울림 – 화가 김환기

마지막으로 김환기(1913~1974)는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가장 상징적인 화가다.
그는 초기에는 전통 산수화에서 출발해,
이후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점, 선, 색면을 통한
독창적인 추상 회화를 발전시켰다.

특히 뉴욕 시절 완성된 ‘점화(點畵)’ 시리즈는
푸른색 화면 가득히 수 천 수 만 개의 점이 찍혀
마치 별빛이 진동하는 우주를 연상시킨다.
그 점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호흡, 리듬,
그리고 생의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환기의 작업은 서정적 추상이라는
한국적 감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고,
오늘날 그의 작품은 국제 미술시장에서
최고가에 거래되는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이 되었다.

 

다섯 화가가 만들어낸 한국 현대미술의 길

정현웅,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김환기.
이 다섯 화가는 각기 다른 색과 선,
조형 언어와 시대적 시선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길을 열었다.
그들은 시대의 상처와 함께 호흡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해왔다.

이들의 작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삶을 견디고,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하는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는
결국 그런 물음에 응답해 온 사람들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