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는 ‘빛의 화가’라 불린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아름다운 빛을 그린 게 아니라,
‘빛이라는 감각’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사람이었다.
그가 평생 그린 건 풍경도, 정물도 아니었다. 오직 빛, 그 자체였다.
그런 그에게 시력을 잃는다는 건 어쩌면 가장 큰 위기였을 거다.
특히 색에 민감하고, 빛의 변화에 따라 수십 개의 캔버스를 동시에 작업하던 사람에게
‘색이 보이지 않는’ 상태는 곧 예술의 죽음을 의미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모네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기를 지나면서
그의 색채는 더 낯설고, 더 강렬해졌고,
화면은 점점 추상에 가까워진다.
이 글은 바로 그 변화 — ‘백내장과 색채 실험의 관계’를 중심으로
모네 후기 회화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빛을 관찰하고, 반복해서 그렸던 화가 모네
모네의 작업 방식은 굉장히 독특했다.
그는 한 장소, 한 대상을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해서 그렸다.
《건초더미》, 《루앙 대성당》, 《런던 의회》, 《수련》…
제목은 같아도, 색과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왜냐면 그가 그리고자 한 건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그 사물을 감싸는 ‘빛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네는 빛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했고,
그 빛에 따라 어떻게 색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는지를 회화로 기록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캔버스는 풍경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인상’을 붙잡아 놓은
빛의 기록지 같은 거다.
그런데, 이렇게 빛과 색을 정확히 느끼고 포착하는 게 전부였던 그가
‘백내장’이라는 눈 질환을 만나게 된다.
화가 모네의 백내장이라는 시각의 한계
백내장은 눈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면서
사물이 뿌옇게 보이고, 색 인식이 왜곡되는 질환이다.
정상적인 눈이 맑은 유리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백내장이 심해지면 김 서린 창문 너머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색 인식의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파랑, 초록 같은 차가운 색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고,
노랑, 주황, 빨강 같은 따뜻한 계열만 상대적으로 더 또렷하게 보인다.
빛에 민감한 화가일수록 이 차이는 더욱 극심하게 느껴진다.
모네는 1912년경부터 백내장 증세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그의 그림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화면이 탁해지고, 명확한 파랑은 사라지고,
색은 탁하고, 붓질은 거칠어진다.
그는 어느 날 편지에 이렇게 쓴다.
“나는 지금 어떤 색을 바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화가 모네가 색이 보이지 않아도, 색을 기억하는 방식
시력이 나빠졌지만 모네는 붓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 색을 바탕으로
그림을 계속 그려나간다.
특히 《수련》 시리즈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이전의 수련 그림들이 맑고 투명한 연못을 담았다면,
후기의 수련은 훨씬 어둡고 무겁고,
마치 물속으로 잠겨드는 감각을 준다.
초록과 파랑은 줄어들고,
보라, 붉은빛, 갈색 계열이 강해진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그가 실제로 잘 인지할 수 있었던 색들이
따뜻한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고 있던 세상 자체가 바뀌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그 ‘왜곡된 감각’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버린다.
수술 이후, 화가 모네에게 두 개의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다
1923년, 모네는 오른쪽 눈에 백내장 수술을 받는다.
한쪽 눈은 수술로 맑아졌지만,
다른 눈은 여전히 누렇게 탁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두 개의 시각 세상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한쪽 눈으로는 차갑고 푸른 세계가,
다른 한쪽 눈으로는 따뜻하고 노란 세계가 겹쳐 보이는 상황.
이건 예술가에게 혼란이면서도, 동시에 실험의 기회였다.
이후 일부 그림에선 지나치게 강한 파랑이 튀어나오고,
색의 대비가 과장되거나 불균형한 색 조합이 등장한다.
하지만 모네는 그 불균형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형태를 버리고 색의 흐름, 덩어리, 진동만으로
화면을 구성해 나가기 시작한다.
추상화로 넘어가는 출발점이 바로 이 시점이다.
화가 모네의 질병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예술의 층위
모네는 자신의 눈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불완전함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각을 회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는 정확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느낄 수 있는 감각에 집중했고,
색을 ‘정확히’ 쓰기보다 ‘정직하게’ 사용했다.
결국 그의 후기 회화는 빛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빛이 사라지는 순간을 기억하는 회화가 된 셈이다.
그래서 그의 말년 수련 연작은 더 이상 풍경화라기보다,
감각과 감정의 잔상이 붓질로 번역된 ‘빛의 시적 기록’에 가깝다.
시력을 잃으며 예술의 경계로 간 화가 모네
모네는 평생 빛을 바라봤고,
그 빛을 색으로 번역해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본질적인 빛의 언어에 도달한 시점은
그 빛이 더 이상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였다.
백내장은 분명 장애였다.
하지만 모네는 그 안에서
새로운 회화의 언어를 만들어냈다.
그건 ‘보이는 대로’ 그린 게 아니라,
‘느껴지는 대로’ 그리고,
‘기억나는 대로’ 색을 쌓아 올린 그림이다.
그래서 모네 후기의 《수련》을 보면
누군가는 혼란스럽다고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평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건 아마도 보는 사람의 감각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네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정확히 뭘 보고 있는가?
형태인가, 색인가, 아니면 빛인가?”
모네 후기 《수련》 연작 분석
모네의 말년 작업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건 역시 《수련》 연작이다.
그는 프랑스 지베르니에 머물며 직접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심고, 그 연못의 물빛과 꽃과 하늘을 수십 년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연못을, 그냥 풍경이 아니라 빛이 머물다 가는 공간으로 그려냈다.
초기 《수련》 작품에서는 물 위에 떠 있는 수련꽃,
물속에 비친 하늘, 그 위를 지나는 구름과 바람까지
부드럽고 명확하게 담겨 있다.
그림의 구도도 수평적이고 안정적이며,
시선은 명확한 수면과 수직 반사 속을 유영하듯 흐른다.
하지만 후기 《수련》으로 갈수록 모네는 그 안정된 구도를 해체한다.
화면에는 더 이상 수평선도 없고,
수면 아래와 위의 구분도 사라진다.
그림은 ‘무엇인가를 그린 것’이 아니라,
‘색과 붓질로 채운 감각의 덩어리’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에 설치된
대형 파노라마 형식의 《수련》은
모네 회화의 절정이자, 실험의 끝이다.
거대한 화면은 관람자의 시야를 감싸고,
관객은 어느새 수련 위를 걷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적인 시각 경험에 빠져든다.
이 시기의 작품은 전통적인 의미의 ‘풍경화’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구체적인 공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색의 층위와 감정의 진폭이다.
모네는 더 이상 수련을 정확히 재현하지 않는다.
그는 물빛의 떨림, 색의 번짐, 감정의 울림을
화면 위에 새기는 중이다.
물감을 얇게 펴 바르거나 두껍게 쌓아 올리며,
그는 빛의 반사와 굴절을 표현하고,
붓질은 때로 부드럽고, 때로 날카롭다.
이런 터치감 자체가 곧 시선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 후기 수련들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고요한 그림이 아니다.
그건 혼란스러운 감각, 무너진 형태,
그리고 그 와중에도 끝까지 빛을 잡아내려는 인간의 몸짓이다.
흥미로운 건, 이런 그림이
오늘날의 색면 추상화(Color Field Painting),
몰입형 전시, 감성 중심의 현대 미술 언어와도 연결된다는 점이다.
모네는 말년에 이르러서야
그 어떤 사물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감각의 흔적만 남기는 회화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실험은 당대에는 완전히 낯설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20세기 이후 미술의 흐름을 앞질러 간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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