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전시

표현주의와 다다이즘의 특징 및 대표 화가

narikkot5020 2025. 7. 7. 09:27

20세기 초 유럽은 격변과 혼란의 시기였다.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진행된 도시화와 근대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파괴적 체험은,
예술가들에게 기존의 질서와 표현 방식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미술이 더 이상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없고,
이성과 합리의 세계관이 인간의 실존을 설명할 수 없다는 자각이 퍼져나갔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등장한 표현주의(Expressionism)와 다다이즘(Dadaism)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대 인간의 불안과 저항, 해체와 새로운 질서에 대한 갈망을 표출한 사조였다.
표현주의는 인간 내면의 감정, 불안, 고통을 외면이 아닌 왜곡된 시각 언어로 드러냈으며,
다다이즘은 전통 예술 자체를 해체하며 무의미와 우연의 언어로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 두 흐름은 단지 미술 양식이 아닌,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고 전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며
20세기 현대예술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작품 <절규>

표현주의의 배경과 조형적 특징 ― 감정의 폭발, 왜곡의 미학

표현주의(Expressionism)는 1905년경 독일에서 시작되어
1910년대에 절정을 이룬 미술 사조다.
이 사조는 르네상스 이래 강조되던 객관적 사실 재현이나 자연 모방 대신,
예술가의 주관적 감정과 내면의 불안을 외부로 투사하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

표현주의 회화의 핵심 조형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형태의 왜곡: 사물과 인물은 해부학적 정확성과는 무관하게 왜곡되어 표현되며,
    이는 감정의 내적 강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 강렬한 색채: 전통적 명암법이나 색조 조화보다는
    심리적 긴장과 불안감을 표현하는 원색과 대담한 대비가 강조된다.
  • 거친 붓질과 불안정한 구도: 형태는 불완전하고, 화면은 의도적으로 불균형하며,
    관람자가 심리적 압박을 느끼도록 구성된다.
  •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도시의 소외, 전쟁의 상처, 인간 실존의 불안,
    계급 갈등, 산업화의 폐해 등이 자주 다루어진다.

표현주의는 단순한 미술 운동이 아니라,
근대인이 겪는 심리적·사회적 위기를 시각적으로 고발한 예술적 언어였다.

 

표현주의 대표 화가 ― 뭉크, 키르히너, 놀데, 콜비츠

표현주의의 선구자는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이다.
그의 대표작 《절규(The Scream, 1893)》는
내면의 불안과 존재의 공포를 왜곡된 인물과 울부짖는 배경을 통해 형상화한 걸작으로,
표현주의의 정신을 예고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에서는 브뤼케파(Die Brücke)와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라는 두 예술 집단이 주도적이었다.
브뤼케파는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Kirchner), 에밀 놀데(Nolde) 등이 주축이었고,
도시의 소외, 인간의 원초적 본능, 성적 억압 등을 거칠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키르히너의 《거리의 베를린 여성들》(1913)은
도시의 익명성과 여성의 대상화, 인간 관계의 단절을
날카로운 붓질과 색채로 표현한 대표작이다.

청기사파에서는 바실리 칸딘스키(Kandinsky), 프란츠 마르크(Marc) 등이
보다 영적이고 추상적인 경향을 강조했다.
이들은 색채를 감정의 언어로 보고, 내면의 정화를 위한 회화를 추구했다.

또한 여성 화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는 목판화와 드로잉을 통해
전쟁, 가난, 여성과 아이의 고통을 날카롭고도 절제된 방식으로 묘사하며
사회적 리얼리즘과 표현주의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다다이즘의 등장과 철학 ― 해체, 우연, 반예술

다다이즘(Dadaism)은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예술 운동으로,
제1차 세계대전의 폭력과 광기를 겪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예술, 도덕, 질서, 국가주의, 합리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과 조롱으로서 만들어낸 사조였다.

“다다(Dada)”는 본래 아무 의미가 없는 단어이며,
운동 자체도 반(反)예술, 반(反)의미, 반(反)문명을 표방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 회화의 기법, 예술의 형식을 모두 해체하고,
우연성, 즉흥성, 비합리, 놀이, 유희를 핵심 창작 원리로 삼았다.

다다이스트들은 시각예술 외에도 퍼포먼스, 콜라주, 팝업북, 시, 소리시(Sound poetry),
즉흥 연극 등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실험을 수행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 해체의 행위, 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다.

다다는 곧 프랑스, 독일, 미국 등으로 확산되며
후일 초현실주의, 해프닝, 플럭서스, 개념미술, 네오다다 등 현대미술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다이즘 대표 화가 ― 뒤샹, 장 아르프, 한나 회흐

다다이즘의 가장 혁명적인 인물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다.
그는《샘(Fountain, 1917)》이라는 이름으로
도자기 변기를 ‘레디메이드(Readymade)’ 개념으로 전시함으로써
“예술은 작가가 예술이라고 선언하는 순간 성립한다”는 전복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이 작품은 현대 개념미술의 시초로 평가받으며,
예술의 정의와 역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장 아르프(Jean Arp)는 우연적 형태와 자동기술을 결합하여
콜라주와 추상 조각을 실험했으며,
한나 회흐(Hannah Höch)포토몽타주(Photomontage) 기법을 통해
당시의 가부장제, 군국주의, 소비자본주의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그녀의 작품 《잘 다듬어진 주방의 이중 초상》(1920)은
여성 이미지의 조작과 사회적 억압을 포토 콜라주로 드러낸 페미니즘적 작품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 외에도 프란시스 피카비아, 라울 하우스만, 리히터 등의 예술가들이
다다이즘의 해체적 실험에 동참했으며,
그들은 “예술은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자체를 조롱하고 흔들었다.

 

표현주의와 다다이즘 ― 불안한 시대가 만든 격렬한 언어들

표현주의와 다다이즘은 모두 20세기 초 유럽 사회의 격변 속에서 등장한 예술 운동이며,
예술이 단지 아름다움과 기법의 문제가 아닌,
시대와 인간, 존재와 진실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표현주의는 격정과 고통, 내면의 고뇌를 드러냄으로써
감정의 깊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했고,
다다이즘은 의미와 예술의 경계 자체를 해체함으로써
예술의 본질을 근본부터 재정의하려 했다.

두 사조 모두 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표현주의는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실존주의 미술로 이어졌고,
다다이즘은 개념미술, 퍼포먼스, 설치미술, 뉴미디어 아트의 밑바탕이 되었다.

현대 예술의 많은 부분이 여전히 표현주의적 감정과
다다이즘적 해체 정신 사이를 오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사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적 양극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