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이 전시회에서 사용하는 설치 기법의 변화
과거 전시회는 주로 회화, 조각, 드로잉과 같은 정적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작품이 벽에 걸려 있고, 관람객은 일정한 동선을 따라 그림을 ‘감상’하는 형식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은 전시에 대한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전시는 단지 작품을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의 공간 예술이자 감각적 경험의 장으로 인식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설치 기법’은 전시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단순한 배치와 조명 위주의 연출에서 벗어나, 동시대 화가들은 작품, 공간, 관람객 간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기획하는 설치 기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설치는 더 이상 조형예술가나 미디어아티스트의 전유물이 아니며, 회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들조차도 설치적 사고를 통해 전시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동시대 화가들이 전시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설치 기법의 변화와 그 의미를 중심으로, 설치 개념의 확장, 구체적 사례, 관람객 경험의 변화, 그리고 향후 전망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설치 미술의 개념 확장과 화가의 접근 방식 변화
설치 미술(installation art)은 1960~70년대 이후 본격화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작품이 특정 공간과 관계 맺으며 전시되는 예술 형식입니다. 초기에는 조각가나 퍼포먼스 작가들이 중심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회화를 기반으로 하는 화가들 역시 설치의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화가는 전통적으로 이젤 위에서 평면 회화를 제작해왔지만, 현대의 전시는 그 회화를 벽면에 단순히 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를 고려해 작업물의 배치, 주변 오브제, 조명, 음향, 심지어 냄새까지 통합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설치는 작품 자체의 시각적 완성도보다 전체 경험을 구성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회화를 넘어서 ‘공간 내 이야기 구조’를 설계하는 데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설치 기법은 더 이상 장르를 구분짓는 수단이 아니라, 전시 구성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핵심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전시장 구성 방식의 진화
동시대 화가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작품이 ‘보이는 방식’만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무엇과 함께 놓이는가’를 중요한 창작의 일부로 간주합니다.
예를 들어, 한 화가가 도시의 소음을 주제로 추상화를 제작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화가는 그림을 단순히 하얀 벽에 걸지 않고, 전시장 벽에 실제 도심의 낙서나 광고지를 재현하고, 공간 전체에 자동차 소리나 군중의 발자국 소리를 틀어 놓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관람객이 작품 사이를 ‘지나가도록’ 유도하며, 관람 자체를 하나의 설치적 동선으로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회화가 단순히 정적인 평면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관람자가 ‘경험하는 요소’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시각적인 만족을 넘어서, 시간성, 공간성, 감각적 몰입이라는 복합적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브제 활용의 확대와 설치 기법의 다중 매체화
동시대 화가들은 더 이상 캔버스와 붓만을 사용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물감 대신 일상 오브제, 건축 자재, 텍스타일, 디지털 매체 등을 활용하여 시각적 결과물과 설치 환경을 통합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화가는 자신의 그림을 전시장 벽에 거는 대신, 캔버스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흙, 돌, 유리 파편 등을 배치함으로써 작품과 현실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설치적 장면을 연출합니다. 또 다른 화가는 그림을 원형 구조물의 내부 벽에 설치하고, 그 안에 관람객이 직접 들어가도록 구성하여, 회화 자체가 하나의 공간을 이루도록 기획하기도 합니다.
특히 미디어와 결합된 설치 기법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로젝션 맵핑, 센서 기반 인터랙션, 조도 변화 장치 등은 회화와 결합되어 화면이 살아 움직이거나, 관람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작품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설치 기법은 점차 다중 매체 기반의 예술 경험 구성 수단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관람자 중심 설치 기법
과거 전시회에서 관람객은 수동적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설치 기법은 관람객을 작품의 일부, 또는 작동 주체로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가 벽 전체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다면, 관람자는 그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림 ‘사이’를 걷게 됩니다. 설치 공간에 놓인 물건을 만져보거나, 앉아서 영상을 감상하거나, 가끔은 직접 작품을 ‘완성’시키는 구조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전시는 감상자를 예술의 소비자가 아닌 공동 생산자로 만드는 전략입니다. 전시 구성은 자연스럽게 ‘체험형’으로 재구성되며, 미술은 이제 시각적 판단을 넘어서 신체적 몰입과 감각적 공명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관람자 중심의 설치 기법은 화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며, 전시기획자에게는 더욱 섬세한 설계가 요구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실제 전시 사례로 본 설치 기법의 변화
설치 기법의 변화는 실제 전시 사례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도시, 해체된 감정들」 전시에서는 회화 작가들이 각각의 방을 하나의 설치 공간으로 기획했습니다. 화가 김○○는 자신의 추상화를 철제 구조물 내부에 설치하고, 그 공간에 실제 도시의 CCTV 영상과 소리를 입혔습니다. 관람객은 그 안을 직접 걷고 머무르며 그림을 ‘감상’이 아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조용한 작업실」 전시에서는 화가 박○○가 자신의 캔버스를 전시장 바닥과 천장에 매달고, 관람객이 설치된 의자에 앉아 ‘360도 회전하면서’ 그림을 감상하는 구조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작품을 마주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설계한 설치 기법의 예시입니다.
이렇듯 실제 전시는 단지 ‘그림의 배치’가 아닌, 공간에 대한 총체적 기획과 감각 설계로 변화하고 있으며, 관람자에게 새로운 감각적 충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설치 기법의 변화가 화가에게 미치는 창작적 영향
설치 기법의 확대는 화가의 창작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화가는 작업실에서 작품을 완성한 후 전시장에 배치하는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전시 공간의 구조, 동선, 조명, 심지어 관람객의 이동 패턴까지 염두에 두고 작품을 ‘기획’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화가로 하여금 회화 외의 매체와 조형 언어에 대한 학습을 요구합니다.
설치를 염두에 둔 작업은 미술관과의 협업, 조명 디자이너, 공간 구성 전문가, 사운드 아티스트 등과의 협력을 전제로 하며, 이는 화가의 창작 세계를 더욱 확장시킵니다.
동시에, 회화의 순수성에 집중해온 일부 작가들은 이러한 흐름에 반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술이 점점 복합적, 몰입적, 다매체적 방향으로 이동하는 현재, 설치 기법의 이해와 수용은 현대 작가에게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 역량이 되고 있습니다.
설치 기법을 이해하는 관람객을 위한 실용적 팁
설치 기법 중심의 전시를 감상할 때 관람객은 보다 능동적인 감상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첫째,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전시 도면 및 구성 해설을 먼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설치 기법은 동선과 구조가 중요한 만큼, 이를 알고 관람하는 것이 감정 몰입에 큰 도움이 됩니다.
둘째, 작품 주변의 오브제, 배경음, 조도, 향기 등 비시각적 요소에도 주목하셔야 합니다. 이들은 설치 기법의 핵심 도구로서, 작품의 의미를 직·간접적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셋째, 전시마다 제공되는 도슨트 해설, QR코드 콘텐츠, 전시 기획자 인터뷰 영상 등을 통해 작가의 설치 의도를 확인하시면, 설치 공간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설치 전시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기 때문에 편안한 신체 상태, 여유 있는 시간, 열린 감정 상태로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전시 공간의 미학으로 진화한 설치 기법
동시대 화가들이 사용하는 설치 기법은 더 이상 보조적 장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회화와 공간, 감각과 메시지를 연결하는 현대 전시의 핵심 구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작가는 더 이상 물감과 캔버스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으며, 관람객 또한 단순한 감상이 아닌 ‘예술적 체험’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설치 기법의 변화는 예술가의 창작 방식, 전시 기획의 전략, 관람자의 감상 방식 모두를 바꾸고 있으며, 이는 예술의 ‘포맷’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전시는 점점 더 복합적이고 몰입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것이며, 관람객 역시 예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현대 미술을 더 풍요롭게 감상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